모현청년의 인터뷰사각지대

첩보부대 장교의 시선으로 본 6.25전쟁 ‘시작과 끝’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왕산리 최동석(87) 옹

“내가 6.25전쟁이 일어난 시간부터 현재까지 존재하는 산증인이라 할 수 있어요.”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기습공격을 가한 그 시간부터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군사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육군첩보부대 장교로 전쟁의 참상을 겪은 할아버지가 있다.

50년째 처인구 모현면 왕산리에서 거주하고 있는 최동석(87) 옹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정전협정 64주년을 맞아 6.25전쟁 시작과 끝을 모두 경험한 최 할아버지의 증언을 들어본다.

# ‘첩보부대 요원 모집’ 벽보 보고 자원 입대

충북 청주가 고향인 할아버지는 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 그러니까 1949년 우연한 기회에 군인이 됐다. 고등학교 졸업 후 취직자리를 알아보던 중 국방부 앞 벽보에 붙여있는 ‘첩보부대 요원 모집’이라는 글귀를 보고 지원했다 덜컥 합격했다는 것이다.

“청주농업학교를 나와서 외삼촌댁인 서울 신당동에 올라와 있었는데, 국방부에서 첩보부대원을 뽑는다 하더라고. 지원서를 달라 했더니 이제 막 시험단계라서 많이는 안 뽑는다는 거야. 공부한 애들을 이길 수 있을까 싶었지만 배짱으로 한번 지원했지.”

뜻밖의 합격 소식에 부푼 기대를 안고 육군정보학교 1기생으로 교육을 받게 된 최 할아버지. 6개월 과정을 수료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 한탄강 인근 지역에 파견됐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육군정보학교의 설립일은 1949년 5월 20일이다. 이를 토대로 할아버지의 첫 근무지 배치 시기는 이듬해 1월말에서 2월초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38선에서 목격한 6.25전쟁의 시작

당시 한탄강은 38선이 있었던 곳으로 북한과 마주한 최전방 지역이다. 최전선에서 목격한 6.25전쟁의 시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육군본부 첩보부대 파견대장으로 나가서 대원 5명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단 말이지. 우리 옆에는 보병들이 있었어. 그런데 그날 오전 4시 반쯤 갑자기 포탄이 날아오는 거야. 비는 쏟아지고… 바로 앞 전곡(연천군 전곡읍)에서 포탄이 엄청 날아왔어. 그러더니 소련제 전차가 막 들어오고, 우리는 가진 거라곤 칼빈소총밖에 없으니 당해낼 수가 있나.”

워낙 기습적인 남침이었기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후퇴밖에 없었다고 한다. 동두천과 의정부를 지나 미아리고개를 넘어 한강에 당도하자 다리는 이미 끊긴 상태. 다행히 기차가 다니는 다리가 노량진 쪽에 남아있어 흑석동 중앙대 뒷산에 모여 북한군에 맞섰지만, 공세를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 최 할아버지의 설명이다.

# 후퇴 도중 인민군 총에 맞고 ‘기사회생’

부대는 계속 후퇴하기에 이르렀고 시흥에서 수원, 평택으로 남하하다 결국 낙동강까지 밀리게 됐다. 최동석 할아버지는 이 과정에서 북한군 총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는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민군 총에 하반신 쪽을 맞은 거야. 야전병원으로 후송되는데 이대로 죽는 건가 싶더라고. 6개월간 제5육군병원에 입원했다가 다행히 회복이 됐어. 그 당시 미군의 약이 좋아서 치료가 잘 됐단 말이지.”

이후 우리군은 낙동강 방어선 전투와 인천상륙작전을 기점으로 전세를 뒤집었고, 1953년 7월 27일 마침내 전쟁이 끝났다. 휴전 후에도 군 생활을 이어가다 1965년 7월 15일 군복을 벗었다는 최 할아버지. 전쟁은 할아버지의 심장에 지울 수 없는 상처도 남겼다.

최 할아버지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피난을 떠난 가족과 연락이 안 됐다”면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머니가 피난 중에 돌아가셨다. 아래지방에 가매장을 했다가 화장 후 다시 고향에 모셨다”고 말했다.

# 젊은이들에게 당부하는 한 마디 “안보불감증”

6.25전쟁 참전용사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아 국가유공자가 된 최동석 할아버지는 현재 참전국가유공자회 모현면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15년부터 매년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지역 국가유공자들을 초청해 위로행사를 열고 있다는 할아버지. 마지막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안보에 있어 너무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단 말이지. 우리는 그게 걱정이라고. 6.25전쟁 때는 우리나라가 군사력도 약하고 정보도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정확하게 아는 사항이 많다고. 그만큼 철두철미하게 준비해서 안보를 키워야 한다는 거야. 사드도 배치하고, 그거보다 더한 것도 배치해서 사용은 하지 말자는 거지. 일이 벌어질 때만 사용하고. 젊은 사람들이 그런 사고방식을 좀 가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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